플레이브의 의상은 매번 바뀌는데, 헤어 스타일은 똑같아요. 혹시 기술적인 문제 때문인가요? (기자)
헤어 변경이 캐릭터의 정체성을 깬다는 의견이 있어서 고민 중입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성구 블래스트 대표)
언뜻 듣기엔 게임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플레이브(PLAVE)는 지난해 데뷔한 5인조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다. 겉으로 보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뒤에 AI(인공지능)가 아닌 진짜 사람이 있다. 플레이브의 노래, 춤 모두 기술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 본체인 사람이 하는 것이다.
플레이브는 데뷔 1년 만에 여러 기록을 썼다. 첫 앨범의 초동 판매량이 20만 장을 넘겼고, 최근 발매한 곡 ‘WAY 4 LUV’는 비비, 르세라핌을 제치고 음악방송 1위를 했다. 지난 13~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첫 단독 콘서트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이들의 다음 계획은 해외 진출이다.
실험적인 시도로 흥미로운 성과를 만들어가는 플레이브의 소속사 블래스트는 VFX(시각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버추얼 콘텐츠 스타트업이다. MBC에서 20년 간 일하며 컴퓨터 그래픽 팀을 이끌었던 이성구 대표가 설립했다. 일반 아이돌 기획사와 달리 내부 인력의 주축은 컴퓨터 그래픽, 게임 엔진 개발자들이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보다는 게임 회사에 가까운 인력 구조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기술을 활용한 오리지널 IP(지식재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탄생시킨 그룹이다.
플레이브 제작 초기 주변에선 이 대표에게 인스타 팔로워 구매 ‘버추얼 그룹은 휴먼 리스크가 없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상의 캐릭터로 활동하니 사건·사고에 휘말릴 걱정은 없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인간의 매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춤은 댄서가 추고, 인터뷰는 AI가 하면 리스크 분산은 되지만 ‘그게 과연 매력적인 IP가 될까’ 싶었어요. 플레이브를 개발할 때도 외형은 복잡한 기술로 구현되지만 내용은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고 봅니다.
그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도 휴먼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실생활은 엉망으로 하면서 버추얼에 가려서 활동할 수 있다고 인스타 팔로워 구매 생각하지 않아요. 일반 아티스트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성실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고작 20명이었던 플레이브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현재 66만 명이다. ‘플리’라는 이름의 팬덤도 있다. 기존 K팝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 웹툰, 애니메이션 장르를 좋아하던 이들까지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인지도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다. 지난주 단독 콘서트도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대관해주려는 곳 자체가 많지 않았다. 번번이 거절만 당하다 올림픽홀에서 아무도 공연하지 않는 날짜를 찾아 어렵게 빌렸다. 공연장에서 버추얼 기술을 구현하는데 들인 비용은 티켓 전체 매출액보다 훨씬 더 컸다. 수억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강행한 공연은 흥행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너무 소중한 기회였다. 이날 콘서트로 입증을 해야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최근엔 올림픽홀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을 대관했다. 올 가을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플레이브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이 대표는 버추얼 아이돌이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하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해외 TV 출연, 콘서트 개최 등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활한 해외 진출을 위해 최근엔 소속 가수들의 해외 활동 경험이 많은 하이브,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소액의 지분 투자를 받아 협력 관계도 구축했다.
혹시 언젠가 플레이브 멤버들의 ‘본체’를 공개할 계획은 없을까. 이 대표는 지금은 캐릭터와 아티스트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은 본체를 버리고 캐릭터로 활동해야 합니다. 누구나 본체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죠. 하지만 다행히 그룹이 잘 되고 있어서, 지금은 멤버들 모두 캐릭터 활동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습니다.